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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경 알자스에서 북(北)스위스에 걸친 소영주(小領主)에서 비롯되었고, 11세기 스위스에 산성 합스부르크(매의 성)를 쌓은 후로 합스부르크백(伯)이라 불렀다.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 이후 실력 있는 국왕의 출현을 꺼린 독일 제후(諸侯)가 1273년 이 집안의 루돌프(1세)를 국왕으로 선출하였다.
 
이렇게 선출된 왕은 정략결혼으로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르크주를 획득함으로써 번영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아들이며 초대 오스트리아공(公)인 알브레히트(1세)도 독일 국왕으로 선출되었으나, 1308년 암살된 후로 15세기까지 독일 왕위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 동안 가령(家領) 확대정책을 착착 진행시켜 케른텐 ·클라인 등을 가령에 병합시키면서 이 집안은 남동(南東) 독일의 대세력이 되었다.
 
1438년 알브레히트 2세의 국왕 즉위 이후로는 독일의 왕위와 제위(帝位)를 계속 차지하였다.
 
15세기 말의 막시밀리안(1세)는 합스부르크가 중흥의 시조로, 에스파냐 왕실과의 통혼으로 가령확대를 꾀하였고, 그의 손자로 황제와 에스파냐왕을 겸했던 카를 5세(世)에 이르러 지배영역은 최대규모에 달하였다. 카를 5세 이후 제위를 보유하는 오스트리아계(系)와 펠리페 2세의 에스파냐계로 분열되었다가, 후자는 1700년에 소멸되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계의 합스부르크는 독일 제위를 보유하고 오스트리아와 그밖의 본령(本領) 외에 헝가리 ·뵈멘 등을 영유(領有)하고, 프랑스의 부르봉왕가(王家)와 대항하는 동방의 국제적 세력이었다.
 
오스트리아는 30년전쟁 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서 독일의 제후(諸侯)는 완전한 영방주권(領邦主權)을 획득하였으나 10년 후에 즉위한 레오폴트 1세(재위 1658~1705)는 사보이공(公) 오이겐의 힘으로 다시 투르크의 침입을 억압하고 전(全)헝가리령(領)을 평정하였다.
 
에스파냐 계승전쟁(繼承戰爭:1701~13)에서는 프랑스를 격파하고 위트레흐트 평화조약의 결과 밀라노 ·나폴리 ·네덜란드 등을 획득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그때까지의 에스파냐 의존체제에서 벗어나 프랑스와 어깨를 겨루는 유럽의 열강(列强)이 되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토는 분산되고 또 이민족의 문제로 시달리게 되어 결국 독일의 주도권을 신흥(新興)프로이센에 넘겨주게 되었다. 합스부르크가 최후의 남자인 카를 6세(재위 1711~40)가 국가기본법(프래그머틱생크션)을 제정하여 전(全)합스부르크가령의 영구 불분할(不分割)과 여자상속제를 정하여 관계 열국의 승인을 얻으려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카를 6세가 죽자 바로 바이에른 ·작센 및 에스파냐가 계승권을 주장하고 프랑스나 사르데냐도 자국(自國)의 이익을 위하여 이것을 지지하여 결국 오스트리아 계승전쟁(1740~48)이 시작되었다.
 
한편, 프로이센도 또 이 기회를 틈타서 예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중요자원지역인 슐레지엔(실레지아)지방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재위 1740~80)는 결국 아헨 화약(和約)으로 계승권을 승인받고, 대신 슐레지엔을 프로이센에 할양하였다. 슐레지엔 탈환을 꾀하는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는 재상(宰相) 카우니츠를 채용, 국력 충실에 진력하는 한편, 프랑스 ·러시아 및 독일의 여러 영방(領邦)과 손을 잡고 프로이센과 싸웠으나(7년전쟁)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를 절대주의적 근대국가로 확립시킨 것은 그녀의 힘이었으며 나중에는 폴란드 분할에도 참여하여 갈리시아 지방을 획득하였다.
 
요제프 2세(재위 1780~90)는 계몽적 전제군주라고 불릴 정도로 농민해방, 종교의 관용 등 계몽주의적 개혁에 주력하였으나 복잡한 국정(國情) 때문에 충분한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자 그 파급을 두려워하였고, 또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을 걱정한 레오폴트 2세(재위 1790~92)는 프로이센과 손을 잡고 프랑스에 간섭하였다.
 
다음 대인 프란츠 2세(재위 1793~1806)도 영국 ·네덜란드 ·에스파냐 등과 대동맹(大同盟)을 체결하고 재삼(再三) 프랑스와 싸웠으나 패전을 거듭하여 1791년에는 캄포포르미오 화약에서 북(北)이탈리아의 영토 밀라노와 네덜란드를, 1801년 뤼네빌 화약에서는 라인 좌안지방(左岸地方)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네덜란드 ·스위스 ·롬바르디아 등지에서의 프랑스의 지배권을 인정하였고, 1805년 프레스부르크 화약에서는 티롤 ·베네치아 지방을 할양하였다.
 
1806년 나폴레옹이 라인동맹을 조직했고 프란츠 2세는 황제의 지위에서 물러났으며(물러나기 2년 전에 이미 오스트리아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음), 이에 따라 중세 이래의 신성(神聖)로마제국은 해체되었다. 1809년 빈 화약에서 오스트리아는 완전히 굴복하고 왕녀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의 황후가 되었으며, 그 후에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1812)에도 참가해야 했다.
 
프랑스와의 대립은 나폴레옹 시대까지 계속되어 나폴레옹과도 시종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결국 패하여 라인동맹 성립을 계기로 신성(神聖)로마제국의 칭호를 버리고, 1804년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황제라 칭하였다.
 
19세기에 와서는 프로이센과의 대항에서 패하여 독일 통일의 지도권을 빼앗기고 독일제국의 세력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함으로써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하여 600년에 가까운 황제가(皇帝家)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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