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문화유산 빛나는 프랑스 그르노블 [프랑스존/한위클리]
2013/06/07 21:22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미투데이로 기사전송 다음요즘으로 기사전송
789_10.jpg
 
789_11.jpg

멋진 그림 앞에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무릎에 힘이 빠지며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것은 스탕달 신드롬의 증상을 느낀 것이다.

1817년 스탕달이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의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를 보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정열적인 감정과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이 최고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을 경험했다. 성당을 나오는데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고 초월적 세상으로 이행한 느낌에 빠져들었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걷기조차 힘들어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시를 읽으며 안정시키려 했지만 그림에서 느낀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다. 그 후 아침마다 민법전을 2-3페이지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라는 글을 ‘로마, 나폴리, 그리고 피렌체’에 짧은 기록으로, 발자크에게는 서한으로 보냈다.

보통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뛰어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순간 숭고한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상태로 순간적인 압박감이나 정신적 일체감 혹은 격렬한 흥분으로 현기증, 정서혼란, 발작, 환각 등의 증상을 수반하는 것으로 스탕달 신드롬이라 한다.

이 증상은 1979년 피렌체의 한 의사가 환자들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여 연구한 결과 주로 환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처음으로 르네상스 걸작들을 접하며 일으키는 문화적 쇼크로 ‘여행자의 신드롬’ 혹은 기록으로 처음 남긴 스탕달의 이름을 따서 ‘스탕달 신드롬’이라 불리기도 한다.

‘적과 흑’ 그리고 ‘스탕달 신드롬’으로 알려진, 스탕달은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그르노블은 알프스 산과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자연 안에 역사, 문화, 과학, 스포츠의 도시로 중세와 현대의 문명을 따라 여행객들이 발견할 것들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늘 스탕달을 사랑하는 문학애호가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르노블의 풍부한 볼거리들
그르노블은 알프스 고산지대에 있는 산악 도시로 이제르강이 도도히 흐르는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4세기에 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의 이름을 따서 그라티아노폴리스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했다. 갈로 로망시대에 작은 촌락으로 시작한 유서 깊은 도시로, 1968년 동계올림픽 개최로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더 풍부한 건축 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역사와 문화, 겨울의 스키타기, 여름의 등산, 스탕달의 문학의 향기가 살아있는 곳으로 일석삼조를 즐기려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다.

바스티유 요새(Fort de la Bastille)는 16세기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보강과 증축을 하며 지어진 성곽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하며 가장 전망 좋은 곳으로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날이 좋은 날은 몽블랑까지 보인다.

생-로랑 성당(Eglise Saint-Laurent)은 4세기 카롤링거 왕조에 의해 지어진 성당자리에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된 것이다. 성당의 지하에는 2세기에서 9세기의 카롤링거 왕조들의 4개의 납골당이 있고 지금은 고고학 박물관(Le musée archéologique de Grenoble)으로 이용되고 있다.

라 카자모르 (La Casamaures)는 1876년에 동양풍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그 시대에는 혁신적인 테크닉이었던 시멘트 벽돌로 지은 저택이다. 프랑스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대건축물로 등록되어 있다. 
 
18세기부터 21세기의 미술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르노블 박물관
그르노블 박물관(Musée de Grenoble)은 고대부터 21세기까지의 작품들이 연대기별로 풍부하게 소장되어 있고 특히 18세기부터 최근의 작품들이 많아 유럽의 박물관 중 명성이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박물관은 알프스를 배경으로 15개의 대형야외조각이 있는 공원과 18000 m²에 달하는 넓은 공간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유물부터 고전주의 시기  루벤스의 ‘성자들에 둘러싸인 성 그레고리우스’, 조르주 드라 투르의 ‘성 히에로나무스’, 카날레토, 가르디에서 네오인상파, 야수파,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 팝아트, 미니멀 아트 등 최근의 현대미술까지 풍부하게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도, 구시가지의 골목 산책, 그르노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도피누아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라 빌라 레 마놀리아,  옛 고등법원, 옛 시청사, 공공건축물, 1968년 동계 올림픽에 맞추어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인 시청사, 문화회관, 분수 등 뛰어난 건축유산물들이 많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  
 
썼노라, 사랑했노라, 살았노라.
 M.드 스탕달(본명 Marie-Henri Beyle1783 ~ 1842)은 평생 170여개의 가명과 필명을 사용했는데 그중에서 스탕달이란 필명은 ‘1817년의 로마, 나폴리, 피렌체’를 발표할 때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탕달의 유래는 스탕달이 좋아하던 독일의 예술비평가 J.J 빙켈마이가 태어난 프로이센의 도시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스탕달은 그르노블에서 태어나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와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의 과잉보호와 아버지의 무관심 사이에서 입주 가정교사 사제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16세까지 친구도 없이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자랐다.

1799년 16세 때 에콜폴리테크닉에 진학하러 파리에 왔지만 시험을 치르지 않고 몰리에르의 연극에 빠져들며 연극관람과 독서에 몰두하며 일 년을 보냈다. 17살에 군대에 입대해 이탈리아 전선에 파견이 되면서 그의 이탈리아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지루한 군대 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그만두었다. 나폴레옹을 숭배해 1806년부터 육군성에 들어가 나폴레옹 아래에서 군 근무를 하며 연애와 사교 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1814년에 나폴레옹이 실각이 되자 마음의 고향 밀라노에 가서 연극, 음악 공연, 박물관 방문, 독서, 사교, 연애를 즐기며 ‘이탈리아 회화사’, ‘연애론’ 등을 썼다. 

1821년 파리로 돌아와 많은 낭만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 1830년 스탕탈은 트리에스트에서 영사로 근무하며 ‘적과 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 로마 근교의 치비타베키아 영사 시절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다 거리에서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써놓은 "밀라노의 사람, 앙리 베일, 썼노라, 사랑했노라, 살았노라." 묘비명처럼 밀라노를 사랑하고, 쓰고, 사교계의 여인들과 사랑에 빠져 평생을 살다 떠났다.
 
스탕달의 작품세계
그는 삶의 열정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나폴레옹의 열정과 이탈리아의 열정을 사랑했다. 그리고  매순간 자기 자신이고자 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는 것조차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는 것조차 거부한 사람이다.

그리고 샤토브리앙, 스탈 부인의 자연의 서정성이나 사물의 묘사를 신랄하게 비평하며, 자신은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분석적 정신과 치밀한 심리적 분석을 통해 글을 쓴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작가이다. 사회적, 도덕적 굴레를 벗어나 지성을 훈련하고 열정을 쏟아내야 한다고 믿었고, 사는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것을 위해 세계에 맞서 싸워야 하고, 사랑 혹은 주의에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믿음을 글로 풀어냈다. 이런 그의 작품양식을 스탕달의 본명을 따 베일리즘이라 하고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스탕달 본인이다.

‘적과 흑’의 소제목은 ‘1830의 연대기’로 1830년대의 역사와 사회가 담겨있다. 이 작품은 당시 신문의 사회면에 실린 두 건의 치정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의 동기와 인간의 내면적 심리를 담은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심리학과 역사철학의 연구서로 인정받기도 한다. 소설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소신으로 글을 쓴 그는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글로 쓰며 사실주의 문학의 문을 연 사람이기도 하다.

평소 스탕달은 자신의 소설이 인정받지 못하자, 100년 후에 인정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살았는데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19세기 후반에 재조명받기 시작해 발자크, 위고, 플로베르 등과 함께 19세기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스탕달 박물관(Musée Stendhal)
스탕달 박물관은 스탕달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가뇽 아파트 (l'appartement Gagnon)를 개조한 곳으로 16세기에 지은 고딕양식 저택의 이층에 자리하고 있다. 스탕달이 그의 아버지와 고모를 피해 숨어들던 자기만의 공간이다. 파리로 떠나기 전 16세까지 이곳에서 몽상으로 시간을 보냈고 이 외로운 시간들은 그의 소설쓰기의 자양분이 된다. 박물관은 여름휴가로 2013년 7월 9일부터 20까지 문을 닫는다.
스탕달의 생가는 18세기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으로 스탕달 가족들이 대대로 살던 곳이다. 7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스탕달에게 상징적인 행복의 공간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아버지의 냉정함과 무관심 속에 살아야 했고 입주 가정교사인 엄격한 사제로부터 교육을 받은 장소로 그에게는 억압과 구속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르노블 시립도서관의 연구와 정보실에서는 스탕달의 원작들과 그의 자필원고, 그에 관한 논문, 작품에 대한 논문 등 다양한 자료들이 있다.

관광안내소에서는 이 세 곳을 연결한 가이드방문 코스를 마련하고 있다. 스탕달의 머물던 장소들을 따라 스탕달의 생가, 스탕달 박물관, 스탕달의 정자, 시립도서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스탕달의 삶과 작품 안에서의 여자들’이라는 강연도 들을 수 있다.
 
[찾아가는 방법]
자동차편 : 파리에서 고속도로 A6타고 리옹에서 A48를 타면 그르노블
기차편 : 파리 리옹역에서 TGV로 약 3시간
항공편 : 오를리 공항에서 그르노블 생 주아르 공항까지 1시간20분 소요
 
 
쿠쿠쿠 뉴스, 유럽의 희망을 쓰다(www.cucucu.co.kr) - copyright ⓒ Cucucu News.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화제의동영상

    화제의 동영상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쿠쿠쿠 뉴스, 유럽의 희망을 쓰다 (http://www.cucucu.co.kr)
      Austria. 
      Schelleingasse 54. A-1040 Wien Austria
      Tel. +43-(0)676-3308-167. Fax. +82-(0)505-960-9730 | cucucunews@gmail.com
      등록번호 142/0040  GB A 00260  | 설립일 : 2000년 7월 30| 대표: Kyung KIM

      쿠쿠쿠뉴스는 성인, 쇼핑, 일반광고 등의 모든 광고 및 쿠쿠쿠뉴스 광고주 업무와 중첩되는 글의 게재를 불허합니다
      Copyright ⓒ 2000-2021 Cucucu News All right reserved
      Cucucu News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